사리암으로 가는 길

 

 

지난 겨울 어느날,

그 옛날 월급쟁이 시절의 동지들을 만나 사업을 하는 것과

월급쟁이로 산다는 것의 차이점을 이야기하면서

그 고충을 토로하니

허허 먼저 산사를 찾아 道를 닦으라네요

그렇게 추천받은 곳이 운문사 깊은 골짜기의 사리암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저 웃으면서 받아 넘겼는데

봄이 오는 길목에서 문득 생각났습니다.


 


 

크든 작든 사업을 한다는 건 참으로 고통스러운 길이요

또 한편으로 재미있는 길인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월급쟁이는 높은 성벽을 지키는 문지기라면

사업가는 미지의 세계를 찾아 꿈을 파는 탐험가라고나 할까

그만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하루하루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구차스러움과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직원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고 나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사람들에 대한 서러움,

그 모든 것이 뒤섞이어

어떤 때는 해일처럼 어떤 때는 썰물처럼 오고가는 시간들을 견디어 낸다는 것

그것이 사업이라는 것을 이제야 조금은 눈치를 채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참고 견디며

또다른 미지의 세계를 찾아 떠날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은

결국 자기 자신을 다스리고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살이에서 가장 힘든 것이지요

 

 

사리암을 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 무언가를 기원하기 보다는

내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시 한번 패기있게 도전해나갈 용기를 얻기 위하여

 

 

운문댐을 지나는데 빛살이 너무도 다사로웠고

갇힌 물결은 어찌 그리도 해맑은 지

긴 겨울동안 답답한 세상에 멍든 가슴이 갑자기 뻥 뚫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 물길을 따라 꼬부랑 길을 돌고돌아 도착한 운문사,

 

 

아직은 완연한 봄은 아니건만 목련은 이미 터질듯 하늘을 바라보고

긴 세월 운문의 길목을 지켜온 소나무들,

해맑은 고동의 향기를 품으며 나의 지친 영혼을 반겨주는 듯 했습니다.

운문사에서 계속 산길을 달려 사리암까지 가는 길,

처연한 계곡을 끼고 목재 데크로드가 친환경적으로 잘 만들어져 있더군요

차라리 운문사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올 걸...

 

 

사리암으로 오르는 산 길 앞에 주차를 하고

하나뿐인 허름한 수퍼에 들러 물 한병에 감말랭이를 사서 계곡을 올랐습니다

그리 높지 않다고 들었기에

보통 절처럼 한 10여분 가면 도착할 것이라는 믿음하에 헉헉거리며 걸어가노라니

어허야 왠 걸 높은 경사의 산길이 길고 험하네요

팔공산 갓바위를 오르는 계단과 얼추 비슷한 것 같았습니다

 

 

겨울내내 운동이라곤 숨쉬기 밖에 하지 않은 몸으로

정말 비몽사몽 한 사십여분 이상 계곡을 올랐던 것 같습니다

 

 

가파른 계곡을 따라 평지라고는 별로 없는 경사지에

중국 무협영화에서나 볼듯한 이국적인 사리암 암자의 위용이 드러났습니다.

 

 

휴일이라 그런 지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고

 

 

그 옛날 쌀이 나왔다는 영험한 동굴의 구멍을 향하여 기원을 드리고

 

 

천태각을 올라 합장을 하고

 

 

산신님께 묵념을 올리고

모처럼의 등산에 배가 고프네요

 

 

공짜로 주시는 절밥을 정말 맛있게 먹고 고마운 마음으로 몇천원 시주를 한 뒤

으시시한 해우소를 들렀다가 한적한 곳에서 담배 한개피 피워물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 짓인가

살아온 반세기, 참으로 어설퍼고 부끄럽구나

앞으로 살아갈 해, 그 몇해나 남았을까

과연 내가 살아 이룰려는 것은 무엇이고 왜 그리해야 되는가

살아가면서

왜 기쁘고 즐겁고 사랑스러운 것에 골몰하지 못하고

늘 불안과 불만, 그리고 외로움에 시달려야만 하는 걸까

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부질 없음인가

나 하나의 존재때문에

나 하나의 생명의 연장을 위하여 주변에서 말 없이 고통받던 영혼들

나의 가족과 숱한 사람들이 나로 인하여 그 얼마나 힘든 나날을 보내었을까

내가 미워하던 사람들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나는 왜 미움의 마음을 버리지 못하였고

그들은 왜 나를 아직도 미워하고 질시하는 것일까

 

 

참으로 어치구니 없는 중생의 삶이로다 !

아 ! 이제 오늘의 생명으로 그 얼마나 많은 세월을 이고 살 것인가

100년을 살기도 힘든데 1000년을 살 것처럼

또 그렇게 모질게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100년도 못살지만 1000년을 살듯이 여유있게

한편으로 허허롭게 내 가슴 속에 숨겨논 욕망을 버리면서 살아갈 것인가

진정 하나의 사람으로 태어나 소중한 것은 무엇이고

끝내 간직해야 할 것과

오늘 당장 버려야 할 것은 또 어떻게 구별하며 살아가야하는 걸까

오늘을 살아 내 삶 속에 불편한 그 모든 것들,

어이하면 계곡의 물살 속으로 던져버릴 수 있을까

아 ! 모든 것이 나의 문제로다

아니 그 모든 물음이 결국 나의 존재로다

오늘의 나의 삶,

문제는 알지만 정답은 알지 못하는 반세기의 인생을 부끄러워하면서

그렇게 영험하기로 소문난 사리암을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해지기 전에 운문사 경내를 한바퀴 돌았습니다.

수백년을 살아 길게 느리워진 소나무,

 

 

대웅전,

그리고 때마침 운문사의 비구니 스님들이 북을 치네요

 

 

두둥둥둥둥둥둥

기념품점에서 손목 팔찌를 하나 사서 조용히 다시 속세로 돌아오는 길,

그 길 위로 조금씩 드리워지는 어둠이 참으로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어디서부터 바꾸어야 하고

그 어느 곳을 찾아 내 마음과 몸을 다시 정갈하게 만들어가야 할까

앞으로 살아나가면서

버리지 못하는 것들 - 내 몸, 가족, 업, 돈, 자존심 그리고 둥둥둥 욕망들

그들과의 싸움과 화해를 나는 잘해나갈 수 있을까

진정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용기는 어디에서 구해야 하는걸까

 

운문사의 봄이 오는 길목 위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몇 백년을 서서 잠들어가는 소나무,

그들에게 내 마음 한 줌 거름으로 남기고 떠나왔습니다. ^^

 

Posted by 인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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