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의 노래



1.

나는 더운 여름이 싫다.

숨막히는 빗줄기와 터질듯이 다가서는 태양의 숨박꼭질 속에서

지친 몸과 마음에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

어둠이 올 때까지 탈출할 수 없는 그 뜨거운 무대포의 사랑이 싫다.

숨길 거친 사랑 속에 따라오는 고독의 그림자,

그 빈 손을 잡으면서 짧디 짧은 가을이 오면 나는 이제 이름을 이야기한다.

꿈에 지친 자작나무라고

그 누군가를 기다리다 지쳐 산지기가 되었다고

곧이어 거친 샛바람이 불고 눈내릴 때면

이제사 이국의 여인되어 다가서는 붉디붉은 태양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다

새하얀 껍질에 뜨거운 가슴으로

설국에서도 매일 저녁 홍시처럼 떨어지는 그대를 사랑하노라고...

2.

못미더운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산등성이 위에서

자작나무 한 무리가 회색의 이리떼 마냥 북풍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

지금 막 겨울이 오고 있다.

사방의 산과 들은 텅빈듯 회색연기가 피어오르고

팍팍한 겨울살이에 지친 사람들의 충혈된 눈빛들이 집집마다 처마에 일렁인다.


Birch Woods - Gustav Klimt Paintings

3.

나는 지금부터 눈내리는 꿈을 꾸어야 한다.

사방의 모든 적들을 무릎꿇게 하여야 한다

서로를 물어뜯는 짐승의 나라를 이제 내 몸을 태워 지켜야 한다.

고고하면서도 낯설지 않는 달빛 여인되어

하늘을 헤엄치며 은빛 몸으로 이 땅과 살아있는 모든 것을 품어야 한다.

낯 선 내일과 이름모를 하루살이 태어나는

그 날이 오면

나는 이 땅 위 모든 것들의 역사가 되리라

서로가 서로를 거부할 수 없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땅의 굶주린 산을 계곡으로 녹이리라

나, 자작은 너무도 고고하여 외롭다 !

나는 결코 나를 사랑할 수 없지만

그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오늘 이 순간을 서있을 수 없다 !



 

4.

지금 이 순간 갑자기 들이닥칠 것만 같은 그대여 !

긴 산맥에 누워 아픈 허리를 뒤척이는 자작나무여 !

이국의 나뭇꾼이 훔쳐간 두 손과 두 다리,

그 상처 속에서 꾸역꾸역 밀려나오는 핏줄기여 !




5.

사람들이여 !

부끄럽지 않느냐

수천년 동안 그대들이 품어온 이 땅이 이제 죽어가고 있다 !

참으로 서글퍼지 않느냐

오늘, 이 순간 그대들의 아이들이 잠못들어 한다.

모두가 그대들이 만들어 놓은 불구의 강 위에서 병든 연어처럼

갈 곳을 잃었다 !


이제 얼마남지 않았음을 그대들은 아는가

그대들이 배신의 계절을 이어갈 때

바람 많은 산등성이 자작나무는 저홀로 잘리고 찢기워져 고고한 것을...


Birch Forest - Acrylic on Canvas


사람들이여 !

이제는 오던 숲길로 돌아가자꾸나

계곡에서 내려와 화목되어 불타는 도시에서 다시 산길로 접어들자꾸나

비록 무거운 발걸음이지만 다시 계곡을 거슬러 오르거라

더 이상 늙어 병들기 전에

더 이상 늦어 치유할 수도 없기 전에 ...



 

6.

자작나무 !

그대가 새하얀 겨울에 소리 없이 우는 날 !

나도 그 곳에서 서러운 꿈을 꾼다.


 

'공원쟁이들의 세상만사 > 쟁이의 노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안의 黑龍이여 ! 날아 올라라 !!  (0) 2012.01.07
자화상  (0) 2011.12.23
2011, 이 가을에는  (0) 2011.10.15
2010, 이 가을에는  (0) 2011.10.15
2009.이 가을에는  (0) 2011.10.15
Posted by 인밸리
: